The Pen

[제인엠마] 회색 하늘

눅눅한 골판지 2026. 5. 20. 11:09
 엠마 그레이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날씨가 좋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리면 더욱 예민해질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지난밤부터 계속되는 비가 엠마의 기분이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제인은 지난 몇 달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제인의 예상대로 조금 늦게 침실에서 나온 엠마는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린 채였다.
 “왔니.”
 “네에….”
 제인의 조심스러운 대답에도 엠마는 제인에게 잠시 시선을 줄 뿐 무슨 일이 있는지 묻지 않았다. 제인은 부산스럽게 굴지 않으려 노력하며 캔버스 뒤에 자리 잡았다. 하루 같은 한 시간이 지나는 내내 제인은 통 그림에 집중하지 못하고 엠마를 훔쳐보았다. 관자놀이를 문질렀다가 눈가를 꾹꾹 누르기도 하는 걸 보면 오늘은 두통이 심한 모양이었다. 제인은 문득 엠마가 런던에 살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그곳은 해가 잘 나지 않는다고 하니까. 실없는 생각을 휘휘 고개를 저어 털어낸 제인은 캔버스 뒤로 숨어들 때처럼 조심스럽게 엠마에게 다가갔다.
 “작가니임.”
 엠마는 대답 없이 고개를 들어 제인을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안색이 창백했다. 제인은 쏟아내고 싶은 걱정을 꾹꾹 눌러 삼키고, 아무 일도 아닌 척 말하려 애썼다.
 “잠깐 쉬시는 건 어때요? 소파에서라도요. 제가 책을 읽어드릴게요. 조금 주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엠마는 문장을 다 듣지도 않고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제인의 말을 끊지 않는 게 인내심의 한계였던 모양이었다.
 “됐어, 내가 어린애야?”
 톡 쏘아대는 목소리에도 영 힘이 없어 제인은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 .”
 제인은 혼이 날 걸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처럼 굴었다. 제 딴에는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정의를 지켜내는 걸지도 모르지. 높은 나무에 오르면 혼이 날 걸 알지만, 혼자 떨고 있는 아기 고양이를 구해야 했다고 변명하는. 그게 이 아이의 다정이었다. 사람을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커다란 애정이기도 했고. 엠마는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지 못했다. 엠마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면, 제인은 우물쭈물하다가 제 말을 듣고 있는지 물었다.
 “… … … 내 책을 읽어줄 거라면 미리 거절할게.”
 엠마는 들고 있던 펜의 뚜껑을 닫고 천천히 일어섰다. 세상이 빙글 도는 기분에 비틀거리다가 책상을 잡고 서면 화들짝 놀란 제인이 다가왔다. 허리와 팔을 감싸 쥐어 부축하려는 그의 손길을 밀어내고 엠마는 곧장 소파로 가서 앉고는 쓰러지듯 소파에 누웠다.
 “그럼, 아그네스 그레이로 할까요?”
 엠마의 뒤를 따르던 제인이 분위기를 환기하려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담요를 먼저 덮어주어야 할지, 곁에 앉아도 괜찮을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제인에게 엠마가 말했다.
 “그것도 별로야. …제인, 나 괜찮으니까 그냥 하던 거 마저 해.”
 “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시는걸요.”
 제인은 담요를 덮어주고 슬그머니 엠마의 곁에 앉았다. 작은 움직임에 엠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 … 누워서 쉬기는 할게. 그러면 됐지?”
 제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엠마는 한숨을 폭 내쉬고 담요를 끌어 올렸다. 제 뜻을 관철한 제인이 일어서려 하자 엠마가 제인의 무릎을 살짝 붙잡고는 어리둥절한 제인에게 별다른 설명 없이 그의 허벅지를 베고 모로 누웠다. 제인이 작게 웃다가 천천히 엠마의 어깨를 토닥였다.
 “잘 자요, 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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